조커는 위험한 영화다 ?? 해외 논란이 되는 영화 리뷰

조커는 위험한 영화다 ?? 해외 논란이 되는 영화 리뷰

머뉘 0 763


조커는 위험한 영화다 ?? 해외 논란이 되는 영화 리뷰 

 

출처 : 

https://www.refinery29.com/en-gb/2019/09/8411843/joker-violence-racist-movie-reaction

 

월요일, 조커는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북미 프리미어를 가졌다. 그 후 몇 일 동안, 이 영화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트위터에서, 반응은 두 진영으로 갈렸다. 완벽에 가까운 걸작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아서 플렉이 만화 속 전설적 악당 조커가 되어가는 미친 과정을 불쾌한 것이 아닌 영웅적으로 받아들이는, 급진적이고 외로운 백인 남성들을 위한 위험한 성명서라는 의견도 있다.

 

현실을 보자면, 영화는 (그리고 대부분의 사려 깊은 비평들은) 그 중간 어디쯤 있다. 조커는 플렉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의 비범한 (조금 과시적이긴 하지만) 연기를 특징으로 하는 인상적인 영화적 성취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에 있어 독과 같은 이야기이다. 자신을 거부하는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총기를 사용하여 폭력을 자행하는 백인 테러리스트에 대한 잔혹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했을까? 그것도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결국, 조커는 폭력적인 소시오패스에 공감하는 내용이다. 플렉은 직업광대이자 코미디언 지망생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아이러니하면서 비극적이고 잔인한 부분은 그가 가진 질환이 그를 부적절한 상황에서 미친 듯이 웃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그리고 지하철에서 정장 차림의 부자들에게 괴롭힘과 구타를 당하며, 영화는 이것으로 그의 살인적 면모의 기원을 설명한다. Sarah Hagi Globe and Mail에 이 영화에 대한 칼럼을 쓰면서, “조커는 소외 받고 분노한 사람들이 기다려온 안티히어로이며,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라고 했다. “백인 남성들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이제 하품이 나옵니다.”

 

조커가 잘 만들어진 영화임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이 영화를 즐길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가 비록 수 많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되었지만,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라는 식의 메시지는 그 자체로 위험하다. Dylann Roof, Elliot Rodger, Faisal Hussain처럼 악마 같은 인간들을 민중의 영웅으로 여기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봤을 때, 이는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녀가 쓴 칼럼 때문에, Hagi당신의 Globe 리뷰에 대한 백인남자의 피드백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고, “백인 혐오혹은 백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며 그녀를 비난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Hagi는 흑인 무슬림 여성이다.) 작가 Kayleigh Donaldson은 피닉스의 연기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트위터를 통하여 나눴는데, 그녀의 비평이 쓸모없다라든지, 그녀가 돈을 받고 영화에 대해 평을 하는 것을 조롱하는 내용의 악플을 받았다. 흑인문화 사이트 The Root에 실린 Tonja Renée Stidhum의 비평 역시 많은 부적절한 리플을 받았다.


  

 

비평가들이(대부분이 여성) 팬보이들의 반발(스타워즈 때 겪어봐서 우리가 익숙해진)에 직면한 것도 놀랍지 않다. 불행하게도 인터넷에 글을 쓰는 여성들은 위협에 시달리는데, 그 글이 만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일 때 특히 그렇다. Hagi역 인종차별주의자”(이런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로 불렸는데, 이것은 유색인종 비평가들에게, 특히 여성 유색인종 비평가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 한 명의 독자도 왜 Hagi가 그녀의 글에서 인종문제를 끄집어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기억하라, 조커의 내러티브는 백인남성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록 그가 신비한 흑인여성 Zazie Beetz와 사랑에 빠지지만.) 감독인 Todd Phillips가 이 영화를 캐릭터에 대한 연구라고 칭했고, 실제로 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두 시간 동안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 인종이나 성의 프레임을 씌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터무니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허구의 인물을 현실의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하거나, 영화제작자들이 폭력적인 사람들에 의해 곡해되거나 미화될 수 없는 안전한 영화만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비평가들도 영화를 그 영화가 만들어진 문화적 맥락에서 분석할 권리가 있고, 또한 이 영화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그렇다면 왜 그런지 표현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조커에 대한 담론 역시 인터넷의 추악한 부분을 비춘다는 것을 감안하면, 나에게도 비판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괜찮다. 나는 트위터 계정과 의견을 가진 흑인여성이다. 나는 그것에 익숙하다.

 

조커는 미국에서 10 4일에 개봉한다. 


 

번역자의 의견:

 

영화 조커를 흑인여성의 입장에서 비평한 글입니다. 그런데 폭력을 정당화한다든지 모방범죄를 낳을 수 있다든지 하는 비판을 한다면, 이에 대해선 수긍할 수 있습니다만, 왜 거기에 굳이 백인남성을 갖다 붙였어야 했을까요?

글에서 필자는 흑인 무슬림 여성 비평가 Sarah Hagi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녀가 받은 비판은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만약 영화 속 조커가 백인남성이 아닌 흑인 무슬림 여성이었어도, 그녀가 영화를 흑인 무슬림 여성의 폭력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했을까요? 조커를 백인남성이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볼 수는 없는 걸까요?


어떤 사람들은 대중문화 작품이나 특정 사회현상에 잘못된 프레임을 씌웁니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미국의 미디어들은 “BLACK MALE”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것이 흑인남성들의 범죄를 부각시켰습니다.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흑인차별을 정당화시켰습니다. Sarah Hagi의 평론은 일종의 “WHITE MALE”입니다. “BLACK MALE”과 공격의 방향이 다를 뿐이지, 본질은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도 부정한 목적을 가지고 잘못된 프레임을 씌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인인 국민이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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